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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행곡리 ‘금산’을 본래의 이름으로 바로잡자

  • 작성자 : 소식통
  • 작성일 : 2020-12-01 18:50:33
  • 조회수 : 1412
  • 추천수 : 1

울진 행곡리 ‘금산’을 본래의 이름으로 바로잡자
  • 전석우
  • 승인 2020.11.23 23:27




금산은 울진군 근남면 행곡 3리와 울진읍 대흥리 일원에 자리 잡고 있다. 금산은 울진군에서 2006년 발간한 『울진의 名山 그리고 숲과 나무』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는 한자 표기로 錦山(금산)으로 표기돼 있다.

지금까지 금산(錦山, 389m)이라고 불러오고 있는데, 본래 이름은 검산(劒山)이다. 현재의 금산(錦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2001년 발간된 『울진군지』에 검산/금산을 구별하지 못하고 혼돈/혼용해 쓰고 있어, 그때부터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530년(중종 25)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년(중종 25)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자료 = 한국고전번역원)

금산 지명의 유래가 된 최고(最古)의 기록은 1530년(중종 25) 편찬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다. 이 책 권45 강원도 울진현 불우조(佛宇條)에 검산사(劒山寺)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에 검산(劒山)이라고 불리어졌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조선 정조 23년(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 1799년)』에 ‘검산사(劒山寺)는 폐사되었다(今廢)’는 기록이 있다.

1899년 편찬된 『울진읍지』
1899년 편찬된 『울진읍지』(자료 = 국립문화재연구소)

대한제국기(1897~1910)에는 현존 최고(最古)의 울진군지로 알려진 1899년 편찬된 『울진읍지』에 월출암을 설명하며 “月出菴 在劒山絶頂俯瞰 滄海見日月之所出故因而名之”라고 언급하며 검산(劒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 이 책에 ‘검산사(劒山寺)는 천량암 서쪽 5리쯤’에 있는데 지금은 폐사되었다(劒山寺 在天糧岩西五里許 今廢)고 기록하고 있다.

또 1908년(융희 2年)에 당시 강원도 울진군수로 있던 유한용(劉漢容)이 편찬한 『울진군여지약론(蔚珍郡輿地略論)』 사찰조(寺刹條)에도 ‘월출암은 검산에 있다(月出菴在劒山)’고 기록하고 있다.

1937년 『조선환여승람 울진군』

1937년 『조선환여승람 울진군』(국역, 울진문화원, 2017년) 산천조를 보면 ‘검산은 군의 서쪽 대흥리에 있다(29쪽)’(劒山 在郡西大興里)고 기록하고 있다.

1939년 편찬된 『울진군지』(국역 울진군지, 울진문화원, 2012년) 산악조(山岳條) 번역문(27쪽)에는 검산은 군의 서쪽 2리 되는 대흥리에 있고(원문, 330쪽 : 劒山은 在郡西二里大興里), 같은 책 지세조(地勢條, p23)에도 ‘동쪽으로 6리를 달려 劒山(검산)이 되어...(중략)’라고 표기하고 있어 일제강점기에도 검산(劒山)으로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971년 『울진군지』 44쪽(산악)과 1984년 울진군지 26쪽(산악) ‘북쪽 일지류(一支)는 아구산이 되어 동으로 6리를 가서 劒山(검산)이 되어...’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 1984년 『울진군지』 26쪽(산악)에도 ‘북쪽 일지류(一支)는 아구산이 되어 동으로 6리를 가서 劒山(검산)이 되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 비단 금(錦) 자를 쓴 錦山(금산)으로 바뀌게 됐을까? 위에 언급한 여러 자료를 살펴본 결과,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부터 1984년 『울진군지』 까지는 모두 劒山(검산)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2001년 발간된 『울진군지』에 금산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즉 『울진군지』 941쪽에는 행곡리를 설명하면서 ‘북쪽은 금산이 보이고 바리재를 넘어 읍남리와 경계를 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또 같은 책 556쪽에는 월출암(月出菴)을 설명하며 ‘행곡리 서쪽 금산에 있던 암자로 창해가 바라보이고 해와 달이 솟아오를 때의 정상(情狀)이 절경’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책 554쪽에는 ‘검산사(劒山寺), 근남면 행곡리 검산 중허리에 있었고 신라 때에 세워졌으나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라고 서술하는 등 혼돈/혼용해 쓰고 있다.

왼쪽부터 1971년, 1984년, 2001년에 발간된 울진군지.
왼쪽부터 1971년, 1984년, 2001년에 발간된 울진군지.

그러나 2001년 『울진군지』에는 금산으로 표기한 이유를 따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1984년 울진군지까지 각종 문헌에서 이 산을 검산(劒山)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으나 2001년 발간된 『울진군지』에서 금산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상도 지방의 발음상의 특성 때문에 ‘ㅡ 와 ㅓ’가 구별되지 않아 당시 실수로 검산을 금산으로 바꾸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1979년 한글학회에서 발행한 『한국지명총람』7(경북편 4, 113쪽)에는 검산사(劒山寺)터 항목에는 해석하지 않고, ‘금산절터[검산사(劒山寺)터]’항목에서 천량암 서쪽에 있는 옛 절터라고 풀이하고 있어 참고가 된다.

이 산을 등산해 본 사람들은 잘 알 수 있겠지만 등산로 곳곳에 숨겨져 있는 기이한 암석들과 천 길 낭떠러지 기암절벽으로 뛰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때문에 ‘금산’보다는 지형적 특징을 잘 담고 있는 ‘검산’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검산(劒山)이란 이름으로 불리어진 역사가 조선 전기부터 500년이 된다. 지명(地名)은 그 지역의 역사적 경험이나 지리적 특징을 담고 있다.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역사가 반영되었으며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갖는다. 그러므로 선조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이 담겨있는 지명을 함부로 변경하지 말고 잘 보존하여 후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임재해 안동대 민속학 교수는 “땅의 내용과 형태, 위치 등에 따라 제각기 일컫다가 주민들의 합의에 따라 어느 하나로 자연스레 귀결되면서 하나로 결정된다”며, “지명은 보이는 땅에 보이지 않는 인문학 정보와 지식을 담고 있는 압축파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본지는 선조들의 역사와 문화가 배인 ‘검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로잡아 사용하기를 제안한다. 또한 잘못 표기되고 있는 지명을 바로잡기 위한 울진군의 보다 적극적 행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료출처/울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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